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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의 기원은 1880년 Gorton Athletic에서 시작된다. 1887년, 그들은 West Gorton과 합병하여 Ardwick FC가 된다. 그리고 1894년, 그들은 드디어 맨체스터 시티라는 현재의 팀이름으로 변경하게 된다. 1899년, 1부리그로 승격한 맨체스터 시티는 지금까지 팀 역사의 선두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긴 역사만큼이나 맨체스터 시티에게는 조금은 재미있거나 놀랄 일들이 많다고 한다.


맨체스터 시티의 옛 엠블렘 인 듯..



1936-37시즌, 드디어 시티는 리그우승을 차지하게 되지만, 어떤 시즌에서는 1부리그의 어떤 팀들보다도 더 많은 골을 넣었음에도, 강등되는 경우가 생긴다. 또, 1957-58시즌에는 득점과 실점이 똑같이 100점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1956년 시티가 FA컵 결승에서 버밍험을 이기고 챔피언이 되기 바로 전에, 시티의 전설적인 골키퍼인 Bert Trautman은 목이 부러진 후에도 경기를 계속 펼쳤다고 한다. 1934년, FA컵 6라운드 Stoke와의 경기에서 당시 가장 많은 관중인 84,569명이 메인로드를 가득 메웠다고 한다.


시티의 성공시대는 Joe Mercer감독과 Malcolm Allison감독이 이끌었던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일 것이다.


맨체스터 시티의 화려했던 1960's 와 1970's



1966년, 1부리그로의 승격을 다시 이루어낸 시티는 레전드인 Colin Bell, Mike Summerbee, Francis Lee을 앞세워 1967-68 리그우승, 1969년 FA컵 우승, 1970년European Cup Winners Cup과 리그컵 우승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황금시대 이후, 시티는 1980년대와 1990년대 그들의 이웃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그늘에 가려지게 된다. 이 시기에 감독들의 노력과 실패는 시티에게 좋은 경험을 가져다 주었지만, 사실 성공적인 시간은 매우 짧았고, 실패가 거의 언제나 따라다녔다.


현재 시티의 프리미어리그 입성에 도움을 크게 준 Kevin Keegan감독



00/01시즌, 시티는 프리미어리그 입성한 지 한 시즌 만에 다시 2부리그로 떨어지게 된다. 01/02시즌부터 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케빈 키건(Kevin Keegan)이 맡게 되는데, 역시 키건감독은 그들을 2부리그 우승을 이끌며 다시 프리미어리그 입성을 시킨다. 02/03시즌, 키건감독은 맨체스터 시티의 강등을 피하게 해주었고, 더불어 그 다음시즌 UEFA컵 진출권까지 얻게 되었다. 이 시즌을 끝으로 맨체스터 시티는 Maine Road(1923-2003)을 떠나 48,000석 규모의 City of Manchester Stadium이라는 새로운 홈경기장으로 옮기게 된다.


City of Manchester Stadium



키건은 2005년 3월경 사임하였으며, 후임에는 스튜어트 피어스가 오르게 된다. 시즌 8위를 기록해 아깝게 UEFA 컵 진출을 놓치게 된다. 05/06시즌에는 매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시즌 막판 10경기에서 9패를 당하는 하락세로 15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다음 시즌엔 14위를 기록하게 되어 피어스는 해임 당하게 되며, 타이의 탁신이 IT기업으로 벌어들인 재산을 가지고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했다. 후임에는 사상 첫 잉글랜드 국가대표 외국인 감독이었던 스벤 에릭손 감독이 오르게 된다. 그 후 맨체스터 시티는 07/08시즌 내내 유럽대회 진출을 놓고 겨루게 된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약화 되었고 결국 9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UEFA컵 진출에 성공했지만 그의 시대도 1년으로 끝나게 된다


마크 휴즈가 3년 계약으로 새 맨체스터 시티 감독이 된다. 휴스는 前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트라이커 였으며, 5년간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었으며, 그리고 4년을 블랙번 로버스의 감독에 있으면서 두번의 UEFA 컵 진출을 따내기도 하였다.


타이에서의 문제로 구단주 탁신의 계좌가 동결되었다는 얘기와 함께 맨시티가 다시 팔릴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 2008년 9월 아랍에미리트의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하얀과 술라이만 알 파힘에게 구단이 넘어갔다. 이러한 매각은 맨체스터 시티는 세계에선 가장 부유한 축구클럽으로 만들게 되었고 특히 레알 마드리드로부터 호비뉴의 3250만 파운드 이적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외에도 첼시의 숀 라이트필립스,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셰이 기븐,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의 크레이그 벨라미 등의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선수진의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선덜랜드, 포츠머스, 스토크 시티, 아스날같은 팀들에겐 홈에선 승리했지만 원정가면 늘 패했다. 시즌 막판엔 성적이 괜찮아 7위를 목표로 했지만 토트넘에게 패하며 물거품이 된다. 컵대회에서도 모순이 이어졌는데 리그 컵 2라운드 에서 3부리그 팀인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에게 패했으며, FA컵 3라운드 에선 2부리그 팀인 노팅엄 포레스트에게 홈에서 0-3 패배를 당하게 된다. 반면에 UEFA 컵에서는 잘했는데, 8강까지 진출해 함부르크 SV에게 최종 스코어 3-4로 패하게 된다.


막강한 자본으로 도약을 노렸던 맨시티



맨체스터 시티는 그 시즌 결국 리그 10위로 마감하였고 휴스는 팀을 더욱더 강화시키고자 여름 이적시장에서 많은 선수들을 영입하게 된다. 아스날에서 에마누엘 아데바요르와 콜로 투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카를로스 테베즈, 블랙번 로버스에서 로케 산타 크루즈, 아스톤 빌라에서 가레스 배리, 에버튼에서 졸리온 레스콧을 영입하여 막강한 스쿼드를 갖추었다. 2009 - 10시즌 개막전에서 블랙번 로버스를 2-0으로 꺾었고 캄프 누에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바르셀로나가 주최하는 조안 감퍼 트로피 대회 (1회성 대회)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다음 상대인 울버햄튼을 홈에서 꺾으며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초반의 상승세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이후 11경기에서 단 3승에 그치는 등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휴스에게 상당한 부담감이 짊어지게 되었다. 결국 마크 휴스는 2009년 12월 19일 해임 당했으며, 후임으로는 인터밀란 감독이었던 로베르트 만치니가 감독직에 오른다.


프리미어 리그 우승!



2011-12 시즌 맨시티는 맨유를 골득실차에서 앞서 44년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특히 2012년 5월 14일, 2011-2012시즌 마지막 38라운드 퀸즈파크 레인저스와의 홈경기에서 전후반 90분이 지나고 1-2로 지고 있을무렵, 추가시간에 에딘제코가 두번째골을 성공시킨후 그다음 세르히오 아게로가 결승골을 성공시키고 극적으로 결국 맨시티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하였다.